050화| 시기
리카는 죽음의 표식이 붙은 입구를 두 개 더, 한 명도 잃지 않고 오르내린다. 경계 밖은 그를 두 가지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함께 살아 올라온 자의 눈과, 시기의 눈. 어깨가 넓은 카슨——그날 가장 먼저 내려가려던 남자——이 그의 앞을 막는다. 이 밑바닥에선 강함이 곧 권위다. 그러나 리카는 강함을 유일한 답이 아니게 만들었고, 카슨 같은 자에겐 그것이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깊이 박힌다. 고란은 물러나 그것을 내버려 둔다——리카를 궁지에 몰아, 그 반응을 더 위로 중계하고 싶은 것이다. 리카는 판을 머리에 새기고 카슨의 옆을 빠져나간다. '이 밑바닥에서 이 판이 누구 손에 있느냐는, 너도 아니고——나도 아니야.'
개원 1010년 1월 5일 · 새벽 00:41 · 산트라니아 지하 · 경계 밖
그 뒤 몇 시간, 고란은 리카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리카는 입구 2개를 더 내려가도록 떠밀렸다. 둘 다 경계 밖에서 붉은 동그라미가 쳐진, 사람이 죽어 나간 곳이었다. 리카는 매번 같은 수로 읽어 냈다. 남들이 못 본 그 규칙을 찾는 것이다. 언제 멎고 언제 움직이는가. 그러고는 사람을 한 마디 한 마디 내려보내고 한 마디 한 마디 올려보냈다. 입구 2개, 건져 올린 물건이 내실 탁자에 쌓였고, 더 죽어 나간 자는 없었다.
도시 밑엔 하늘이 없었지만, 리카 뇌결정 속 시계가 새벽 00:41을 가리킬 무렵, 경계 밖엔 이미 그를 새로운 눈빛으로 보는 자들이 생겼다.
그 눈빛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몇 시간 그와 함께 입구를 내려간 자들의 것이었다. 그들이 리카를 보는 눈은, 자기들을 살아서 올라오게 해 주는 무언가를 보는 눈이었다. 경계 밖에선 살아서 올라오게 해 주는 쪽이, 많이 건지게 해 주는 쪽보다 값졌다. 그들 중 몇은 별일 없어도 리카 곁에 슬그머니 다가와, 말없이 그가 입구를 읽는 모습만 지켜보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눈빛은 리카에게 더 익숙했다. 시샘이었다.
그 눈빛이, 그가 세 번째로 입구에서 올라왔을 때, 한 사람의 형상이 되어 내실 문가를 막아섰다.
리카는 그를 알아봤다. 투명장을 바치던 그때, 어깨가 떡 벌어지고 손에 두툼한 굳은살이 박인 채 맨 먼저 내려가려 했던 그 사내였다.
「너 이름이 뭐야?」 사내가 물었다.
「아직 아무도 그건 안 물었어.」 리카가 말했다.
「난 카슨이야.」 사내는 그 말을 흘려 넘겼다. 「네가 내려오기 전엔, 경계 밖에서 제일 깊은 입구들은 다 내가 사람 데리고 내려간 거야. 사람이 죽긴 했지. 그래도 물건은 내가 건져 올렸어.」
「지금도 건지는 건 너야.」 리카가 말했다. 「난 셈만 할 뿐이고.」
카슨이 한 걸음 다가섰다. 리카보다 머리 반은 컸고, 짓눌러 오는 그 힘이 벽 한 채 같았다.
「셈만 한다.」 그가 목소리를 낮춰 되뇌었다. 「등급조차 재지지 않는 놈이 여기 서서 셈을 하고, 내 사람들이 그 셈을 들어야 한다 이거지. 이게 경계 밖에서 무슨 뜻인지 알아?」
리카는 알았다.
경계 밖은 힘으로 가린다. 카슨은 등급이 재지고, 한 무리를 휘어잡을 수 있고, 그 입구의 가장 깊은 몇 번을 다 제 손으로 데리고 내려갔다. 그게 그가 여기 버티고 선 밑천의 전부였다. 그의 목숨과 그 한 몸의 힘은 한 덩어리라, 떼어 낼 수가 없었다.
리카는 재 봐야 백지였고, 닭 한 마리 비틀 힘도 없어, 경계 밖의 잣대로는 한 치도 쳐줄 게 없었다. 그런데 하필 고란의 사람들이 그의 박자 셈을 듣기 시작했고, 그를 따라 내려간 자들은 다 살아서 올라왔다. 리카는 카슨의 물건에 손대지 않았고, 카슨이 사람 데리는 자리도 빼앗지 않았다. 그가 건드린 건 그 밑에 깔린 잣대였다. 여기서 살아 올라오느냐 마느냐가, 힘과는 별개일 수도 있다는 것——그걸 드러내 버린 것이다.
카슨 같은 자에게는, 이게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다 모질었다.
「난 너랑 안 다퉈.」 리카가 말했다. 「넌 네 입구를 맡아, 난 내 박자를 세고. 각자 건지면 돼.」
「이미 달라졌어.」 카슨이 그를 노려봤다. 「저놈들이 벌써 생각하기 시작했어. 너 따라 내려가는 게 나 따라 내려가는 것보다 오래 산다고.」
사실이었다. 리카는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해 봐야 소용없었다. 말로 가라앉힐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리카는 카슨의 어깨 너머로 내실을 흘끗 봤다.
고란은 탁자 뒤에 앉아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물건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리카는 그가 듣고 있음을 알았다. 카슨이 막아선 그 순간부터, 고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눈짓 하나 보내지 않았다.
제법 쓸 만한 수하 둘이 문간에서 맞붙었으니, 본래라면 누군가 나서서 판을 눌러 둘 법했다. 그런데 고란의 손끝은 탁자 위에 멈춘 채 까딱도 하지 않았다.
리카는 알아차렸다. 들리지 않은 그 두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물건 더미에 한 번도 가닿지 않았다. 줄곧 리카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말리지도 편들지도 않은 채, 이 시샘이 내실 안에 고이고 곪도록 내버려 두었다. 기다리는 것이었다. 등급이 재지지 않는 이 자가 문틀 앞까지 몰렸을 때, 무엇을 털어 내놓을지를.
그리고 고란이 본 것은, 고스란히 그 더 위에 있는 자에게 올려 보내질 터였다.
리카는 이 모든 걸 마음에 담았다. 카슨은 드러난 자리에 있어, 거칠긴 해도 어디를 막고 섰는지는 보였다. 성가신 건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 몇몇이었다. 오늘은 그가 입구 읽는 걸 구경하다가, 내일은 발을 어느 쪽으로 옮길지 알 수 없었다. 고란이 가장 수월했다. 제 입은 한마디도 뗄 것 없이 탁자 뒤에 앉아 지켜보다가, 다 보고 나면 본 그대로 위에 올려 임무를 마치면 그만이었다.
정작 그 자신이 가야 할 곳은, 이 모두의 발밑에서 천 몇백 미터를 더 내려간 곳이었다. 카슨이 가장 과감하게 드는 입구조차 닿지 못하는 깊이.
그는 머지않아 여기 모두를 떨쳐 내고 혼자 내려가야 했다.
카슨은 여전히 문가를 막은 채, 리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리카는 몸을 틀어, 그와 문틀 사이의 좁은 틈으로 빠져나갔다. 어깨가 카슨의 팔을 스쳤다. 지나가면서 그는 카슨에게만 들리도록 나직이 한마디 했다.
「넌 사람 데리고 입구 내려갈 때 힘에 기대지. 난 다른 데 기대고. 그런데 우리 둘 다 한 가지를 셈에서 빠뜨렸어——」 그가 카슨의 등 뒤 반 보에서 멈췄다. 「이 밑에서 이 판이 누구 손에 있느냐는,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야.」
카슨이 고개를 돌렸다. 리카는 이미 내실로 걸어 들어간 뒤였다.
【제050화 끝 · 산트라니아 지하 경계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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