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명향편

038화| 꿈속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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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학자 로라는 저자 없는 책 한 권과 거듭되는 꿈에 이끌려 홀로 유명삼음으로 들어선다. 꿈속의 비석을 찾아내고——보아서는 안 될 의식과 맞닥뜨린다.

개원 1010년 1월 1일 · 심야 · 여명 대륙 노바 어둠의 도서관

노바라는 이 도시에는 낮이 없었다. 여명 대륙 남서쪽 먼바다의 한 섬에 세워진 도시로, 다크엘프들은 도시 전체를 영원한 밤 속에 지었다——하늘이 어두운 게 아니라, 이곳의 하늘은 본래부터 밝지 않았다. 달빛이 일 년 내내 걷히지 않는 옅은 안개를 뚫고 내려와 거리를 회청색으로 물들였다.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곧 낮이었다.

어둠의 도서관은 도시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히리·F·로라는 그곳에 이미 밤을 꼬박 앉아 있었다——그녀에게 이것은 그저 또 하나의 평범한 작업 시간일 뿐이었다.

로라는 젊은 다크엘프 여학자였다. 그녀가 매료된 것은 단 하나, 아무도 읽지 못하는 글자였다. 이미 오래전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쓰지 않는, 여든 종이 넘는 고대 문화의 문자가 그녀 눈에는 그래도 윤곽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그녀를 괴짜로 여겼다——멀쩡한 엘프가 흑마법을 배우지도, 장사를 하지도 않고, 온종일 가장 낡고 아무도 손대지 않는 그 몇 줄의 책장 뒤에 틀어박혀 죽은 문자들과 씨름했으니.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아무도 읽지 못하는 한 줄의 글자가,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매혹적이었다.


오늘 밤 그녀는 가장 낡은 그 책장의 맨 아래층에서, 제목도 저자도 없는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책은 낡았다. 너무 낡아서 넘길 때마다 숨을 죽여야 했다. 한 번의 숨결에 종이가 흩어질까 두려웠다. 안의 글자는 그녀가 거의 다 알아보았지만, 읽어 내고 나니 못 읽는 것보다 더 등골이 서늘했다. 책에는 한 단어가 거듭 적혀 있었다. 조물주.

조물주——이 천지 만물을 창조한 그 한 분.
그분은 세계의 처음에, 3종의 오래된 마법을 두셨다.
그 첫째, 삼혼. 그 둘째, 흑마법. 그 셋째——

셋째, 그 페이지는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로라는 얼굴을 종이에서 한 치도 안 되는 곳까지 들이밀었으나, 겨우 네 글자만 알아볼 수 있었다. 명정지술. 그 뒤로는 끊겨 있었다.


그날 밤 이후, 로라는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는 노바의 회청색이 없었다. 다른 곳이었다. 안개가 짙었다. 세 걸음 밖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었다. 나무는 구름까지 솟을 만큼 높았고, 가지와 잎이 빽빽하게 얽혀 본래도 많지 않던 빛을 죄다 걸러 냈다. 안개의 끝에는 비석 하나가 서 있었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그 저자 없는 책과 같은 종류의 「조물주의 오래된 마법」 부호였다. 로라는 꿈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아래로 읽어 내려갔고, 매번 셋째 마법 그 대목까지 읽었다——그러고는 꿈이 끊겼다. 그 책의 떨어져 나간 모서리와, 똑같은 자리에서 끊겼다.

그녀는 여러 밤을 이어 이 꿈을 꾸었다. 나중에야 그녀는 깨달았다. 이것은 보통 꿈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그녀를 그곳으로 부르고 있었다.


정상적인 다크엘프라면 누구든, 길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 짙은 낯선 곳을 꿈꾸었다면, 얌전히 영원한 밤의 안전한 노바에 머물렀을 것이다. 로라는 정상적인 다크엘프가 아니었다.

그녀는 책을 뒤지고, 지도를 뒤지고, 도시의 그녀보다 더 늙은 몇몇 학자들의 구술을 뒤졌다. 마침내 그녀는 그 지명을 짜 맞춰 냈다. 유명삼음. 여명 대륙 북방의, 「잊혀진 진리의 땅」이었다. 지도에는 그곳을 표시한 이가 거의 없었고, 표시한 자들은 하나같이 덧붙여 두었다. 가지 말라고.

로라는 작은 봇짐 하나와, 외할머니가 남긴 마법석 한 덩이, 빈 탁본지 몇 장을 챙겼다. 그녀는 길을 떠났다.


노바에서 여명 대륙 북방까지는,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기에 여러 날의 길까지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가 아니라 여러 날을 걸어서야, 비로소 유명삼음의 안개 속에 들어섰다.

유명삼음은 꿈속과 똑같았다. 짙은 안개. 높은 나무. 빛을 걸러 내는 가지와 잎. 로라가 첫걸음을 들여놓는 순간, 등골의 그 서늘함이 다시 돌아왔다——그녀는 이곳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이곳에 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꿈속의 방향에 의지해 걸었다. 안개 속 한 걸음 한 걸음이 더뎠다. 너무 더뎌서 그녀는 자신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때, 안개가 한 자락 갈라졌다.

비석이 거기 있었다. 꿈속과 똑같았다. 그 위에는 그녀가 평생 읽어 왔으나 처음으로 실물을 직접 본 부호가 새겨져 있었다. 로라의 손이 한 번 떨렸다——두려움이 아니라, 한 학자가 평생 단 한 번 마주할, 해답 앞에 선 그런 떨림이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 한 줄의 글자를 만지려 했다.


그때 그녀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껏 낮춘 영창이, 비석 뒤편, 안개가 더 짙은 그쪽에서 들려왔다. 로라는 본능적으로 비석 옆 그늘로 몸을 움츠렸다. 안개 저편에, 검은 망토를 두른 이들이 둥글게 둘러서 있었다. 그들 손에 든 것은 검은 빛을 뿜고 있었다——불빛이 아니라, 둘레의 빛을 삼켜 버리는 그런 검음이었다. 그들은 한 마디를 외었다. 한 번, 또 한 번, 욀수록 빨라졌다.

긴 밤에서 깨어나소서, 위대한 주재자여.
당신의 그림자를, 세계의 모든 구석까지 펼치소서.

로라는 알아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읽어 본 그 어떤 고문보다 오래된 언어였다. 알아들은 순간, 위장이 통째로 가라앉았다——이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언가를 깨워 부르는 짓이었다.


그녀는 물러섰다. 너무 느리게 물러섰다. 발밑의 마른 가지 하나, 딱.

안개 저편의 영창이, 멈췄다. 검은 망토에 싸인 얼굴 하나가, 돌아서, 그녀가 몸을 숨긴 그늘을 똑바로 마주했다.

로라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달아나면서 외할머니의 그 마법석을 손바닥에 움켜쥐고, 그 위에 새겨진 「보호 주문」을 읊었다——옅은 빛 한 겹이 그녀를 감쌌다. 첫째 흑마법이 빛에 부딪혔고, 빛은 버텼다. 둘째, 빛이 갈라졌다. 셋째는, 곧장 뚫고 들어와, 그녀의 왼쪽 옆구리에 박혔다.

맞은 통증이 아니라, 통증 뒤에 상처가 안으로 곪기 시작하는 그런 서늘함이었다. 흑마법의 부식이 피를 따라 안으로 기어들었고, 한 치 기어들 때마다 그녀의 걸음이 한 푼씩 풀렸다. 로라는 나무 한 그루에 의지해 쓰러지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멀리 못 간다는 것을 알았다. 안개 속, 검은 망토의 발걸음이 하나씩 하나씩,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따라붙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까맣게 물들어 가는 자신의 왼쪽 옆구리 천 자락을 보았다. 처음으로, 그녀가 읽어 낸 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이것이 끝인가?」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묻는 것을 들었다. 목소리는 아주 가벼웠다. 안개조차 받아 내지 못할 만큼 가벼웠다. 그러고는 그녀의 무릎이, 더는 버티지 못했다.

【제038화 끝 · 여명 대륙 노바 → 유명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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