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정
밑바닥 산수사가 남몰래 붙인 이름. 회살률이 여러 해 동안 한 선에 붙어 있다. 따질 수 있는 선보다 아슬아슬하게 낮고, 사람을 계속 짜낼 만큼은 높다.
밑바닥 산수사 하나가 남몰래 붙인 이름이다. 방시의 응기산 회살률은 여러 해 동안 한 선에 꼬박 붙어 있다. 방시가 따지고 들 수 있는 선보다 딱 알맞게 낮고, 산수사에게서 성신단 값과 간병비와 전매비를 계속 짜낼 만큼은 딱 알맞게 높다.
이름은 단포의 저울에서 빌려 왔다. 단포의 저울은 열흘에 한 번 보정한다. 저울을 보는 사람은 추를 터무니없는 자리로 옮기지 않는다. 많이 옮기면 손님이 그 자리에서 낯빛을 바꾸고, 적게 옮기면 남는 것이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딱 알맞으면서 열흘마다 계산이 맞아떨어지는 그 자리다. 방시의 회살률은 누군가 그런 식으로 보정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 선의 양 끝에서 재는 분수를 동전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산수사 주화 1회 · 미납금
성신단 (급할 때 두 배) 24
혈을 눌러 기를 넘기기 50
임시 간병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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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174 동전동전 174닢은 서가 광갱 정식 인부의 두 달 넘는 월삯이다. 낼 수 있는 자는 상처를 좀 다스리고 거리로 돌아온다. 내지 못하는 자는 수련 계약으로 대신한다. 계약으로도 대지 못하는 자는 들려 나간다.
높기도 너무 정확하고 낮기도 너무 정확하다. 정말 하늘의 뜻이라면 어느 해는 느슨하고 어느 해는 빡빡해야 마땅하다. 이 선은 해마다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날마다 뒤에서 그 눈금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정확하다.
더 서늘한 것은 같은 결이 나타나는 자리가 단약 한 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법을 바꾸고 거리를 바꾸고 아무 상관 없는 산수사로 바꾸어도 결의 자리는 똑같다. 동가의 단약, 서가의 잔권, 산 위 종문 외문에서 내려 주는 월례단과 정전 토납까지, 끊긴 자리의 손 대는 각도와 획을 잇는 방향이 맞아떨어진다. 한 손에서 나온 수법 같다. 보정된 것은 아마 가게 한 곳, 거리 하나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방시에는 이런 의문을 다루는 말들이 통째로 마련되어 있다. '운에 달렸다', '자질이 한계에 다다랐다', '근골이 들쭉날쭉하다'. 이 말들이 가장 편리한 대목은 누가 손을 댄 물건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데 있다. 말을 여러 번 듣다 보면 듣는 쪽이 먼저 스스로 인정해 버린다.
방시에서 이 말을 쓰는 사람은 없다. 이 말을 쓸 수 있는 사람도 대개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입에 올리면 어떻게 알아봤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청기 방시에서 설명은 침묵보다 훨씬 비싸게 먹히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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