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풍사

방시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도 정체를 말하지 못하는 끄나풀 그물. 보고, 적는다. 나서서 사람을 잡거나 입을 열어 캐묻는 것은 그들 일이 아니다.

마지막 업데이트: 2026.06.20

방시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도 정체를 말하지 못하는 끄나풀 그물이다. 찻집에 앉아 있는 한량, 냉차 노점 뒤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주인, 골목 어귀에 늘 있는 그 어린 끄나풀 — 그중 몇은 문풍사의 귀다.

그것은 보고, 적는다. 나서서 사람을 잡거나 입을 열어 캐묻는 것은 그들 일이 아니다. 적는 것도 자잘하다. 누가 누구와 노점 앞에 서서 반각쯤 이야기했는지, 누가 3일 내리 보이지 않았는지, 누가 갑자기 새 옷 한 벌로 갈아입었는지, 누가 셈을 치를 때 꺼낸 영석이 지난달보다 많았는지.

끄나풀을 알아보는 촌스러운 방법이 몇 가지 있다. 같은 노점 뒤에 선 사람이 반달 사이에 얼굴이 3번 바뀌었다면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나절을 앉아 물을 한 번만 더 받고, 눈이 그릇을 보지 않고 길목만 보는 자도 차를 마시러 온 것이 아니다. 늙은 산수사는 신참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손을 봐라, 얼굴을 보지 말고. 진짜 노점 주인의 손에는 일거리가 있고, 끄나풀의 손은 대개 놀고 있다.

이름의 내력은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이름만 들으면 관아 같은데, 방시에서는 그 문도 그 간판도, 그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는지도 본 적이 없다. 종문이 방시에 기르는 귀라는 사람이 있고, 관에서 예전에 세워 두고 거두지 않은 것이라는 사람이 있으며, 애초에 그런 관청은 없고 소문을 사 모으는 한량 몇이 스스로 내건 이름인데 오래 내걸다 보니 다들 진짜로 여기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어느 말이든 통하는 데가 있고 통하지 않는 데도 있다.

그래서 산수사들은 길을 돌아가는 법을 익혔다. 동가에서 서가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곧장 가는 쪽이 2할쯤 빠르지만 냉차 노점 앞을 지나야 한다. 멀리 도는 쪽은 품이 좀 더 들고, 그 대신 한 줄 적히지 않는다. 더 걷는 그 몇 걸음이 값을 하는지 아닌지를 방시 사람들은 아주 분명하게 셈한다.

그것이 누구를 위해 보는지, 적어 둔 것이 어디로 가는지 — 답할 수 있는 산수사도 없고 감히 묻는 산수사도 없다. 물어본 사람은 며칠 지나 스스로 말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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