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서 걸어 나오는 것
눈밭에 남은 발자국 한 줄. 사람 모양인데 발가락이 6개다. 벽 밑동에서 탑 뒤까지 곧장 갔고, 돌아가지도 밟고 들어가지도 않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오래된 수벽군은 말한다. 짐승 같지 않고 잊힌 사람 같다고.
벽 밖에서 오는 것들 중에는 울부짖고 덮치고 기름과 불에 타 재가 되는 것이 있다. 그리고 흔적만 남기는 것도 있다.
눈이 한 차례 온 뒤, 누군가 제47 감시탑 아래 눈밭에서 발자국 한 줄을 발견했다. 사람 모양이었다 — 발바닥의 윤곽, 뒤꿈치의 팬 자리, 걸을 때 무게중심이 쏠린 방향까지 전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발가락이 5개인데 이 발자국은 하나하나 6개였다. 여섯째 발가락은 새끼발가락 바깥쪽에 나 있었고 다른 것보다 짧아서 땅에 닿을 때 절반만 찍혔다.
발자국은 벽 밑동에서 출발해 탑 뒤까지 곧장 갔다. 돌아가지 않았고 쌓인 눈을 만나면 그 위를 밟고 넘었다. 탑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고 탑문 앞에서 반걸음 비껴 돌아갔다. 절반쯤 가서 갑자기 없어졌다. 앞의 한 걸음은 있는데 다음 한 걸음이 없고, 눈 면은 온전했으며, 헤집힌 자국도 끌린 자국도 없고, 위로 날아오르거나 아래로 꺼진 자취도 없었다.
발견한 사람은 법도대로 재었다. 보폭 71센티미터, 깊이 2센티미터, 다 자란 수벽군이 밟은 것보다 얕았다. 재고 나자 날이 밝기 전에 그 자국은 새 눈에 덮였다.
벽 위에는 이런 일에 대한 불문율이 있다. 쫓지 않고, 부르지 않고, 남쪽으로 보내는 전황 보고에 적지 않는다. 쫓아간 사람들 중에는 돌아온 자도 있고 돌아오지 않은 자도 있다.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노병이 한마디만 한다. 밤에 벽 밑동에서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이 규칙의 이유를 설명한 사람은 없다.
오래된 수벽군 사이에는 윗대에서 전해 내려온 말이 하나 있다. 어떤 것들은 벽에서 걸어 나온다. 짐승 같지 않고, 잊힌 사람 같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밤에 그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려는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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