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기년

연재의 현재가 쓰는 기년. 개원 1010년, 모든 것은 그해 새벽의 오류 메시지 한 줄에서 시작된다.

마지막 업데이트: 2026.06.20

이 세계는 '개원'으로 해를 센다. 세금 고지서, 항행 허가, 스펙트라 보관 기록, 관측 보고서, 저장될 것이라면 무엇이든 머리에 개원 몇 년 몇 월 며칠이 붙는다. 깔끔하고, 공식적이고, 아주 안전해 보이는 시간축이다.

쓰는 법에는 규칙이 있다. 시청과 스펙트라의 문서는 반드시 초까지 표기하며, 형식은 '개원 925년 3월 11일 02:14:08', 연월일 사이에 공백 하나, 시분초 사이에 콜론을 찍는다. 여명 대륙 관측국의 조사 보고서는 더 엄해서 기기 판독값에는 채취 시각을 반드시 붙여야 하고, 1초만 어긋나도 보고서를 통째로 되돌려 다시 베끼게 한다. 도시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날을 세는 것은 달까지고, 자기부상 정기권에 찍히는 것도 연과 월뿐이다. 악토 남안 강보의 수호자들은 또 다른 방식이다. 그들의 일지에는 연도를 쓰지 않고 '몇 대째, 인계받은 지 몇 해째'를 쓴다. 한 대가 다음 대로 이어 세어 내려와, 지금은 열세 번째 대, 인계받은 지 32년이다.

연재의 현재는 개원 1010년이다. 이해 1월 1일 새벽 03:07, 산트라니아 정보연구 제10자국의 화면 하나에 오류 메시지가 한 줄 떴다. 서명 칸에는 8개월 전에야 은밀히 정해지고 한 번도 대외에 공표된 적 없는 문자열이 적혀 있었는데, 타임스탬프는 개원 925년 3월 11일 — 85년 전이 찍혀 있었다. 그것은 그렇게, 만에 하나도 새지 않아야 할 에너지망 검증 속으로 뛰어들었다.

'개원' 두 글자가 세는 것은 평화다. 삼족 대전이 끝나고 평화 조약을 맺은 그해가 개원 원년이다. 조약 이전의 것은 보관할 때 일률적으로 전기라고 표시한다. 펼쳐보면 대개 남은 것은 노래의 부서진 몇 줄뿐이고, 연도조차 맞지 않는다. 삼족이 동토 위에서 500년 동안 서로를 죽인 그 대목은 산도라, 악토, 여명 어느 도서관에서도 온전한 연표가 나오지 않는다. 왜 그해부터 다시 세기로 했는지, 본래 쓰던 것은 어느 기년이었는지, 조약 본문에는 적혀 있지 않고 필사본에도 채워 넣은 사람이 없다.

개원 기년은 기억하도록 허락된 것만 기억한다. 사람 손에 세계에서 지워진 날들을, 그것은 하루도 표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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