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의 구술 | 침묵의 벽을 삼십 년 지킨 노병이 말한다, 벽 위의 이름은 저 혼자 사라진다
침묵의 벽을 30년 지킨 노병이 퇴역한 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벽은 높이가 100미터고 검은 돌을 쌓은 것이다. 낮에 보면 벽이지만 밤이 되면 위에 글자가 보이고 푸른빛을 낸다. 저 글자들은 역대 왕들의 이름이다. 벽을 지킨 그 세월 동안 나는 그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저 혼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이 글은 침묵의 변경 수벽군에서 물러난 한 노병의 구술을 옮긴 것이다.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으니 그러려니 하고 들으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벽군에는 법도가 있어 벽 위의 일은 남쪽으로 전하지 않는다. 이 노병도 물러난 뒤에야 입이 풀렸다. 기록한 사람은 그가 말한 대로 적었고, 말을 멈춘 자리도 그대로 두었다.
침묵의 벽은 높이가 100미터고 검은 현무암을 쌓아 만들었으며 동해에서 서해까지 이어진다. 낮에 보면 그냥 벽이다.
밤에는 다르다. 초소탑 위에 서서 벽면을 보면 위에 글자가 있다. 아주 어두운 푸른빛을 내는데 별자리 같다. 노인들은 저것이 역대 정통 왕들의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열여섯에 벽에 올랐다. 첫날 밤은 자는 것이 금지라 총안(銃眼)에 서서 날이 밝을 때까지 서 있었고, 내내 그 글자들을 보고 있었다.
나는 30년을 지켰다. 그 세월 동안 나는 그 글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저 혼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풍화가 아니다. 누가 정으로 쪼아 낸 것도 아니다. 어느 날 순찰을 돌다 보면 어제까지 있던 이름이 오늘은 그 돌 위에서 말끔히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다.
기록한 사람이 어제까지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벽 위에는 조령에 적히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고 했다.
이름 순찰이라고 한다. 밤 당직이 제 구간을 걸으며 고개를 들어 훑고, 새로 비어 버린 자리가 있으면 적는다. 몇 번째 탑인지, 동쪽인지 서쪽인지, 바닥에서 몇 계단 높이인지. 그 수첩을 나는 30년 적었다.
떨어지는 방식은 두 가지다. 소리가 나는 쪽은 먼저 아주 가는 파열음이 한 번 나는데, 그러면 달려가 볼 여유가 있다.
소리가 없는 쪽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나도 한 번 겪었다. 한낮, 볕이 좋았고, 고개를 드니 그 글자의 아랫부분이 비어 있었다. 나는 그 돌 앞에 한참을 서서 윗부분에 몇 획이 남았는지 세었다. 두 획이었다.
기록한 사람이 벽 밑동의 것들을 쫓아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답하지 않고 기름 이야기를 꺼냈다.
기름은 뜨겁되 끓여서는 안 된다. 너무 끓인 것은 부어 봐야 흰 연기가 될 뿐 벽면을 덮지 못한다. 이런 것은 조령에 쓸 수 없고 노병이 손으로 잡아 가르친다.
적히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밤에 벽 밑동에서 이름을 부르지 마라.
왜 부르면 안 되느냐고 거듭 묻자 그는 법도는 법도라고만 했다.
이름이 하나 사라지면 그 구간의 벽이 '물러진다'. 밤이면 벽 밑동에서 무언가가 운다. 빙 돌면서 울부짖고, 한 마리가 또 한 마리를 데려온다. 우리는 기름에 불을 붙이고 낙석기(落石機)를 쓴다. 그래도 속으로는 안다. 벽은 바깥의 것은 막아도, 벽이 제 글자를 떨어뜨리는 것은 막지 못한다.
우리 당직에서도 사람이 죽었다. 긴 세 번 짧은 두 번. 나는 그 사람의 성을 내 작은 수첩에 적었다. 남쪽 사람은 왕의 이름을 적고, 북쪽 사람은 제 이름을 적는다.
노병은 한마디를 더 흘렸는데, 무슨 뜻이냐고 묻자 더는 말하려 하지 않았다.
벽 위에 이름이 하나 줄면 남쪽에 사람이 하나 준다. 죽은 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왕도 쪽에서야 물론 믿지 않는다. 벽이 제 혼자 글자를 떨어뜨릴 리가 있으며, 이름이 사라졌다고 사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될 리가 있느냐고. 너무 오래 서 있다가 머리가 얼어 버린 변경 병사의 헛소리로 들린다.
이야기를 마치며 그는 노인들이 벽은 12구간으로 나뉘어 있고 한 구간이 한 왕조라고 했다는 말을 꺼냈다. 자기가 세어 보니 그중 4구간은 이미 절반이 떨어져 있더라고 했다.
그래도 기억해 두는 게 좋다. 언젠가 집의 오래된 족보를 넘기다가 자신은 분명히 기억하는데 남들은 다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하는 이름이 하나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거든 — 그때 벽을 30년 지킨 이 노병이 정말로 미쳤던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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