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보완·2026.06.20

보유|방시의 산수사는 왜 늘 경계에 막히는가 — 아무도 크게 말하지 못하는 몇 가지 설명

산수사는 왜 늘 경계에 막히는가? 방시에는 세 가지 설명이 있다. 앞의 두 가지는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세 번째를 말하는 자는 먼저 좌우에 사람이 없는지부터 살핀다. 공법 자체가 처음부터 결이 남겨진 채 돈다는 것이다.

(본 항목은 방시의 견문을 정리한 것으로, 대부분 산수사들 사이의 구전이며 어느 종문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는다.)

청기 방시에 오래 있다 보면 알게 된다. 경계에 막힌 자는 거리에 널렸고, 누가 경계를 깼다는 소식은 한 해에 몇 번 듣기 어렵다. 서가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은 자들 중 열에 일곱은 응기 3층 아래에 머물러 있다.

같은 저급 공법인데 종문 제자는 위로 올려 가고, 산수사는 절반쯤에서 맥을 상하고 주화하고 그대로 굳는다. 왜인가? 방시에는 몇 가지 설명이 있다. 늘어놓을 테니 알아서 가늠해 보라.

가늠하기 전에 장부부터 보자. 서가 광갱 정공의 한 달 삯이 동전 80 닢. 응기산은 한 알에 동전 3 닢, 열 알 한 첩에 8 닢이고, 1층에서 3층 사이의 사람은 하루에 1 알에서 2 알을 삼킨다. 주화를 한 번 겪었을 때의 빚은 따로 친다. 급히 쓰는 성신단이 배로 쳐서 24 닢, 혈을 눌러 기를 넘기는 값이 50 닢, 간호비가 100 닢. 도합 174 닢, 광갱에서 두 달 남짓 일한 삯에 맞먹는다. 못 내는 자는 수련 계약을 잡히고, 잡힐 것조차 없는 자는 실려 나간다.

첫째, 자질을 탓한다. 손이 가장 덜 가는 설명이고, 종문이 가장 믿어 주기를 바라는 설명이기도 하다.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근골이 나쁘고 심성이 들떠서라는 것이다. 자기를 탓하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 다른 데를 탓하려면 먼저 누구를 탓할지부터 물어야 한다.

이 말에는 들어맞지 않는 데가 있다. 정말 사람마다 자질이 다른 탓이라면 막히는 자리도 여기저기 흩어져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한 무리가 한꺼번에 같은 굽이에서 멈추고, 주화하는 자들도 하나같이 같은 자리가 먼저 답답해지고 같은 자리가 먼저 터진다.

둘째, 단약의 독을 탓한다. 방시의 저급 단약은 열 가마 중 세 가마가 독을 품고 있어, 경맥에는 진작부터 은근한 상처가 쌓인다. 중간쯤 되는 단포가 3개월 동안 판 응기산 가운데 각인을 들고 되돌아오는 것이 적어도 1할이다. 폐단 항아리에 있는, 삼키면 맥을 상하는 사흑단은 매달 어김없이 2 알에서 3 알이 나온다. 반품 규칙도 아주 매끄럽게 돌아간다. 한 알 물리면 한 알을 메운다. 너무 매끄럽게 돌아가는 탓에, 그 1할이 왜 해마다 1할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설명으로는 풀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방시의 단약을 입에 대지도 않는 산수사까지 똑같이 막힌다는 것이다.

셋째, 공법을 탓한다. 이 설명을 하는 자는 먼저 좌우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목소리를 낮춘다. 산수사의 손에 도는 공법은 종문 내고에 있는 판본과 애초에 같은 물건이 아니라고, 앞도 뒤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가장 요긴한 중간 단락만 파내어졌다고 한다. 결이 난 것을 그대로 따라 익히니 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사본은 동전 두어 닢짜리 한 장부터 영석 한 알짜리까지 몇 등급으로 갈리지만, 어느 등급이든 3층 앞뒤에서 같은 자리에 멈추는 사람이 반드시 나온다.

묻고 다니다 보면 저마다 하는 말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종문 외문 제자는 산 위에서도 막히는 사람이 있다고, 다만 산 위에서는 경계에 막혔다고 하지 않고 근골이 들쭉날쭉하다고 한다고, 넉 자로 끝이고 그 뒤는 없다고 말한다. 단포 점주는 그건 불조절이라고, 그날 밤 숯을 못 봤다고 말하고는 다시 주판을 튕긴다. 서가에서 약재를 지고 나르는 산수사는 더 대놓고 말한다. 산 위와 산 아래가 애초에 같은 물건을 익히는 게 아니라고.

동구 술 노점에서는 늙은 산수사 하나가 사발을 내려놓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젊었을 때 결이 없는 사본을 한 부 본 적이 있는데, 죽은 사람의 베개 밑에 눌려 있었다고.

네 가지 설명은 떨어지는 자리가 대체로 같다. 잘못은 산수사 자신에게 있다는 데로 떨어진다. 마지막 하나만 다른 데로 떨어졌다.

한마디 더 짚어 둘 것이 있다. 방시에서는 "경계에 막힌 것은 자질이 나빠서"라고들 하지만, 방시는 자질을 잴 수가 없다. 잴 수 있는 것은 층수뿐이다. 종문이 사람을 뽑을 때 쓰는, 사람 키 절반쯤 되는 청석. 손을 얹고 기를 돌리면 기가 몇 층까지 닿느냐에 따라 돌 표면의 고리 무늬가 몇 고리까지 밝아진다. 청석이 재는 것은 그 기가 안정되어 있는지뿐이다. 집사가 그것을 책자에 적어 넣고 나면, 읽을 때는 자질이 되어 있다.

다만 방시의 늙은 산수사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있다. 정말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방시에서 파는 공법 안에 없다는 것이다. 시작하는 법은 살 수 있고 거두는 법도 살 수 있는데, 중간 한 단락만은 살 수 없다 — 천하의 저급 공법이 서로 짜지도 않았는데 같은 자리에서 빠져 있다.

우연인가?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다만 서가 부적 노점의 절름발이 여가 실한 말을 한마디 했다. 손님 대신 베껴 주는 토납결은 어느 저본에서 베끼든 중간의 그 몇 줄에서 붓이 걸린다고. 그 몇 줄은 원래 손에 붙지 않는다고, 오래 베끼다 보면 손이 저 혼자 안다고.

관측자 댓글

0건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관측자가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