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기경
수행의 첫 문턱. 영기를 들이고 주천을 돌려 단전에 응결시킨다. 한 경계가 9층이며, 방시 산수사가 평생 손대 볼 수 있는 전부이기도 하다.
수행의 첫 문턱이다. 천지의 영기를 몸 안에 들이고 경맥을 따라 주천으로 돌려 단전에서 조금씩 응결시키는 것을 응기라 한다.
한 경계 안이 9층으로 나뉘고 9층이 다 차야 대성이라 한다. 층과 층 사이를 가르는 것은 기의 순도와 안정이다. 같은 한 모금의 기라도 잡되게 기르고 흩어지게 기른 자는 아무리 쌓아도 한 층을 안정되게 앉히지 못한다.
방시 산수사에게 응기는 이미 태반이 평생 손대 볼 수 있는 전부다. 9할이 익히는 《소주천 토납결》은 3층까지만 적혀 있다. 3층 위로는 따로 필사본을 구하고 따로 사승을 구해야 하는데, 그것은 대개 종문 제자나 입에 올릴 수 있는 일이다.
앞의 세 층은 걸리는 시일이 대체로 정해져 있다. 하루 아침저녁으로 반 시진씩 앉으면 부지런한 자는 3~5개월에 2층을 안정되게 앉히고, 한 해쯤이면 3층 문턱에 닿는다. 3층 다음부터는 시일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3층을 지키며 두 해 가까이 앉아 있는 자도 있다. 기가 3층 꼭대기에 이르면 문 없는 담벼락을 들이받는 것 같아서, 어떻게 밀어도 넘어가지지 않는다. 방시에서는 이를 두고 근골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체념을 권한다.
층수는 입으로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검증을 받아야 한다. 종문은 사람을 거둘 때 사람 키 반쯤 되는 청석을 쓴다. 돌 표면에는 아래에서 위로 고리 모양의 환문이 새겨져 있어, 손을 얹고 기를 돌리면 기가 몇 층에 닿았는지에 따라 환문이 그만큼 밝아진다. 고리가 온전히 밝아야 인정한다. 반 고리만 밝거나 환문이 밝았다 어두웠다 흔들리면 집사는 한 층 낮추어 적는다. 두 층 사이에 기가 떠서 앉지 못하는 것은 그들 눈에 주화의 조짐이다. 따져 봐야 소용없다. 돌 위에 밝은 고리 수가 곧 그 사람의 층수다.
응기의 기는 살아 있다. 어떤 때는 걸쭉하고 어떤 때는 묽어서, 기를 기르는 자는 날마다 그것을 시중들어야 한다. 한 번 잘못 기르면 경계는 물러나지 않아도 기가 한 층 아래로 가라앉아, 열흘 보름은 쉬어야 돌아온다. 한 번 주화한 자는 기르기가 더 어렵다. 기가 하루하루 아래로 가라앉아,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감고 이를 악문 채 그 숨이 저절로 풀리기를 기다린다. 풀리지 않으면 밤을 새운다.
한 층 차이가 방시에서는 하늘 차이다. 응기 7층인 자가 서가에서 규정비를 걷는다. 스물 남짓에 7층까지 올랐다고 다들 근골이 좋다고 한다. 3층짜리 산수사는 사람들 앞에서 뺨을 맞아도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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