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보완·2026.06.20

덧붙임|제왕릉은 정말 '황제를 묻기' 위한 것뿐일까?

제왕릉은 정말 '황제를 묻기' 위한 것뿐일까? 몇몇 문명의 제릉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상한 것이 하나 드러난다. 최상급 제릉일수록 주 묘실에 시신이 없다.

(이 글은 민간 고고 수필을 정리한 것이다. 어떤 학술 기관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으며, 참고용일 뿐이다.)

우리가 어릴 때 배운 판본은 아주 단순하다. 제왕의 능묘는 황제를 묻기 위한 것이다. 부장품도 묘도도 장치도, 죽은 제왕이 지하에서 인간 세상의 격식을 계속 누리게 하려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은 네 글자로 요약했다. 사사여사생(事死如事生), 죽은 이를 산 이 섬기듯 섬긴다.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다만 이 판본은 더 기본적인 것을 빠뜨렸다. 제릉은 대개 죽은 뒤에 짓는 것이 아니다. 황제가 살아 있을 때 제 손으로 짓는 능에는 따로 이름이 있어 수릉(壽陵)이라 한다. 착공은 대개 즉위한 그해이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짓는다. 진시황은 열세 살에 즉위하자마자 여산을 파기 시작했고, 앞뒤로 38 년, 사서에 적힌 부역 인원은 70 만 명이다.

이런 공사가 국력을 얼마나 먹는지는 옛사람들이 직접 셈해두었다. 《진서》는 한대의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

한은 천하의 공부를 셋으로 나누어, 하나는 종묘에 바치고, 하나는 빈객에 쓰고, 하나는 산릉에 채웠다.

한 왕조가 해마다 세수의 1/3을, 아직 아무도 눕지 않은 지하 건축물에 계속 부어 넣은 것이다.

이 판본을 따라가면 더 널리 퍼진 오해가 하나 있다. 부장품은 죽은 사람이 쓰라고 넣은 것이라는 오해다. 부장 전용으로 구운 그릇에는 업계의 이름이 있다. 명기(明器)라고 한다. 태토가 무르고 벽이 얇아 액체를 담지 못하고 불에도 올리지 못한다. 만들어질 때부터 누군가에게 쓰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 부장 목록을 진짜로 읽는 사람은 지상에 있다. 정(鼎)을 몇 점 쓰고 묘도를 몇 개 내는지가 모두 정해져 있어서, 수가 맞지 않으면 산 사람들 사이에서 곧바로 말이 나온다.

묘도 자체도 신분의 일부다. 한대 제릉은 지하에 묘도가 4 개 있고 동서남북으로 하나씩 낸다. 제후는 2 개까지, 그 아래는 1 개뿐이다. 어떤 무덤이 제왕급인지 가릴 때는 부장품보다 이쪽이 더 단단한 기준이다.

형식은 계속 변했다. 선진 시대에는 봉분도 나무도 두지 않아, 위를 걸어도 아래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한 이후로는 봉토를 쌓아 멀리서도 보이게 했다. 당에 이르러서는 아예 산 하나를 통째로 파내 묘실로 삼고, 이를 산을 능으로 삼는다고 불렀다. 부르는 이름도 지역마다 맞지 않는다. 관중의 시골 사람들은 지표의 그 흙더미를 무덤 혹이라 부르고, 후난·후베이 일대에서는 아예 지명으로 들어가 둔(墩)이 되었다. 주롄둔, 레이구둔이 그렇다. 더 남쪽 링난까지 내려가면 무덤 산이 된다.

여기까지는 찾아보면 다 나온다. 정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은 몇몇 고대 문명의 제릉을 나란히 놓아야 보인다. 가장 아래층 주 묘실까지 파고 들어가도 제왕의 유골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공식 설명은 모두 그럴듯하다. 오래전에 도굴당했다, 이장했다, 처음부터 의관총이었다. 한두 기라면 통한다. 그런데 빈 주 묘실의 비율이 유난히 높고 문명을 가리지도 않는다. 나일강가의 그 피라미드들 석관도 열어 보면 똑같이 비어 있다.

몇 가지 더, 판단은 알아서 하도록 늘어놓는다. 적지 않은 제릉에서 묘도의 폭과 높이 비율이 관을 메고 걷는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 바닥에 붙은 구간만 유난히 넓게 잡혀 있고, 위쪽은 성인이 등을 70 도까지 굽혀야 지나갈 만큼 낮다. 단면을 재본 사람이 있는데, 나온 형태는 바닥에 붙어 기어 다니는, 사람보다 긴 무언가에 더 가까웠다.

같은 왕조의 사서에는 제왕이 '남천'했다거나 '서순'했다가 그대로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어디로 옮겼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뒷이야기가 전혀 없다. 이런 서술이 정사에 너무 많아서 베껴 쓰다 빠뜨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도용이다. 어떤 왕릉의 부장 도용은 눈이 세로다. 도자기를 굽는 이 바닥의 오랜 규칙은 동공을 둥글게 새기라는 것이다. 둥글어야 사람 기운을 붙들어 둔다. 한 가마에서 세로 동공이 나오면 틀까지 통째로 깨뜨린다. 그런데 그 도용들의 세로 선은 깊고 정확하게 새겨져 있고, 수십 구 가운데 하나도 어긋난 것이 없다. 장인이 이유 없이 동공을 세로로 새길 리는 없다. 무언가를 보고 새긴 것이 아니라면.

물론 하나하나 떼어놓으면 다 설명이 된다. 어느 것에나 정상적인 설명이 있다.

다만 그것들을 겹쳐놓으면 불편한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주실은 비어 있고, 묘도의 단면과 부장 도용의 눈이 나란히 사람 모양이 아닌 같은 무언가를 가리키는, 그런 종류의 제릉이 정말 있다면, 거기 묻힌 것은 '죽은 황제'일까, 아니면 '황제가 벗어놓고 버린 그 한 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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